Scene

/이불사진/

하루가 저문 밤. 개운하게 씻고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가 핸드폰을 열어 곧장 인스타로 향한다. 알고 있다. 메시지를 주고받을 누군가가 존재하지도 않고, 마땅히 올리고 싶은 그 어떤 사진도 나의 앨범에는 없다는 것을. 심지어 인스타를 헤매이다 한두 시간을 훌쩍 보내고 시선으로부터 떼어내듯 핸드폰을 내려놓을 것이라는 사실도. 그렇게 마주한 내 현실은 적막으로 가득하겠지. 더 이상 이불 속이 포근하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밀려오는 자책감과 옅은 두통, 무겁게 가라앉아 버린 마음은 오늘의 잠도 우울하게 만들 것이다. 나는 어제와 그제와 그그제와 그그그제의 모든 밤을 통해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 왜. 도대체 왜 나는 이토록 허겁지겁 내 자신을 학대하듯 인스타로 내모는 것인가.

not SNS - RNS, Record Networking Service

/우간다 아기 침팬지 그림/

해리 할로우(Harry Harlow)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 레서스원숭이들을 어미로부터 떼어 놓았다. 이 작고 여린 새끼 원숭이들은 어미 역할을 대신하는 두 가지 장치와 함께 하게 되었다. 하나는 철사로 엮어 만든 어미 모양의 원숭이였다. 이 장치에서는 젖병을 통해 모유가 나왔다. 다른 장치는 철사를 엮고 그 위에 천을 둘러 어미의 털 촉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대신 젖병은 달지 않았다. 원숭이는 배고플 때만 철사 어미에게로 갔다. 길게는 20시간이 넘도록 천으로 감싼 어미 모형에 꼭 달라붙어 있었다. 무서운 자극을 마주했을 때에도 이들의 선택은 천으로 감싼 어미였다. 이 잔인한 실험은 심리학 역사에서 애착(Attachment)을 이해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지.

인간은 무리지어 사는 사회적 동물이다. 나는 호랑이를 좋아하지만 호랑이처럼 혼자 살 수 없다. 나무늘보가 팔자 좋다 생각하지만 나무늘보처럼 혼자 살 수 없다. 수리부엉이 혹은 문어처럼 홀로 살 수 없다. 무리 안에서 고독할 수 있지만, 무리 없이 홀로 살 수는 없다. 홀로 있는 조용한 나의 방보다 시끌벅적한 카페를 찾아가 공부하는 이유도, 혼자 여행해도 괜찮은 이유도, 빈 병에 편지를 넣어 망망대해에 띄워 보내는 이유도 우리는 무리 안에 있고 싶기 때문이다. 무리 안에 살고 있다는 그 온기가 우리에게는 중요하다. 그것은 어떤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다만 살기 위해 서로의 온기가 절실하다. 그렇다면 그 온기는 지금 어디에 있나. 마을도 이웃도 가족도 친구로부터 잔인하게 떨어져 나온 우리는 온기를 찾아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우리의 어떤 굶주림도 해결해 주지 않지만, 따뜻한 눈길도 손길도 주지 않지만 다만 천으로 감싼 온기를 위해, 우리는 어떤 ‘장치’로 향하고 있는가.

'나'와 연결되었을 때, 비로소 -

사랑으로 바쁜 시간에는 핸드폰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모르는 사람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 자리는 기대보다 훨씬 즐겁다. 다시 볼 수 없는 사이이기에 다시 꼭 만나고 싶은 사이가 되니까. 그 순간 나는 나 자체이니까. 누군가의 자식으로, 어느 회사의 무엇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총합 그 이상, 즉 나로 존재할 수 있으니까. 그 순간 나에게 인스타 세상은 필요 없다. 나에게 가짜 어미는 필요 없다. 진짜 어미의 온기가 내 앞에 있으니까 - 나라는 사람으로 살아 있고 상대도 살아 있으니까. 우리는 서로의 세상을 대화로 넘나들며 나의 세상보다 우리의 세상이 훨씬 넓고 아름답고 깊다는 사실에 경탄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니까. 그렇게 무리지어 사는 인간이라는 동물은 온기를 나누는 거니까.

이십여 년 전 크리스마스이브, 나는 홀로 기숙사에 있었다. 그곳은 낯선 타국이었고 내 방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나는 튕겨져 나가듯 밖으로 향했다. 가장 번화한 거리를 찾아 분주하게 걸었다. 광고판이 번쩍거리고 크리스마스 장식이 화려한 전구 불빛 아래 모여든 몇몇의 여행객들을 발견하고서야 내 발걸음은 잦아들었다. 양손을 외투 주머니에 푹 찔러 넣고 마치 늦어버린 약속이 있는 사람처럼 한참 동안 그 일대를 걸으며 나는 마음의 허기를 채웠다.

지난 화요일이었다. 열여섯 정도 되어 보이는 교복을 입은 네 명의 소년들이 버스 정류장에 모여 있었다. 서로 몸을 부딪히고 웃고 떠들다 버스 한 대가 세 명의 아이를 싣고 떠났다. 남은 한 아이는 잠시 생각하는 듯싶더니 바지에 찔러 둔 핸드폰을 꺼내어 재빨리 인스타를 열고는 아래로 아래로 끊임없이 스크롤을 해댔다. 나는 생각했다 - ‘얘야, 뭘 찾는 거니.’ 그리고 또 생각했다 - ‘거기엔 아무것도 없어. 그 어미는 가짜야.’ 그리고 다시 또 생각했다 - ‘네가 찾고 있는 게 무엇인지 넌 알고 있는 거니. 어떤 사람들은 네가 찾고 있는 그것을 애착이라고 부른대.’ 그리고 질문했다 - ‘우리가 살기 위해 정말 필요한 건 무얼까.’

거울 앞에서 느리게 외출 준비를 하는 내 모습을 떠올린다. 몇 벌 되지 않지만 아끼는 옷들 사이에서 오늘에 가장 어울리는 옷을 고른다.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머리를 매만지는 거울 속 내 표정을 떠올린다. 두 뺨과 입술에 가득한 생기와 설렘을 그려 본다. 크게 숨을 고르고 문을 나서는 순간을 상상한다. 그렇게 나선 거리에 기분 좋게 온화한 햇살이 쏟아진다. 사실 비가 와도 상관없다. 그건 그 나름대로 괜찮을 테니까.

거리를 천천히 걷는다. 오가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말풍선이 떠 있다. 누군가는 점심을 무엇으로 먹을지 고민한다. 누군가는 출근길에 자신의 아이가 건넨 예쁜 말을 떠올린다. 고백하지 못한 사랑의 말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고, 버스 너머로 보이는 풍경에 작게 감탄하는 사람도 있다. 그 수많은 이야기들이, 사소하지만 포근한 이야기들이 내 삶의 어떤 풍경이 된다.

나도 나의 이야기를 머리 위로 띄워 본다. 날이 맑아서 좋다라든지, 내가 입은 옷이 마음에 든다든지, 며칠 후에 만날 누군가 때문에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하다든지 혹은 기대된다든지. 나에게도 주변의 어느 누구에게도 이렇다 하게 중요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무해하지도 않은, 그저 풍경이 될 어떤 이야기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러다 문득 ‘오늘 이유 없이 기분이 좋네’라고 혼잣말을 하면 지나가던 누군가가 ‘그 말에 저도 기분이 괜히 좋아지네요’라고 건네는 것이다. 어느덧 대화가 된 우리 둘의 혼잣말은 또 다른 누군가가 말을 보태는 순간 모두가 함께하는 독백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내가 무리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나는 또다시 혼자가 되어도 그다지 두렵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홀로 있던 방에 돌아오더라도 나는 적막하다고 느끼는 대신 고요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만하면 나는 꽤 괜찮은 하루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까만 화면을 바라보고 있어도 전혀 우울하지 않은 것이다. 내가 느낀 건 진짜 온기였으니까. 철사로 엮어 만든 어떤 장치가 아니라 정말 살아 있는 존재들과 함께인 거니까.

사랑으로 바쁜 시간에는 핸드폰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모르는 사람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 자리는 기대보다 훨씬 즐겁다. 다시 볼 수 없는 사이이기에 다시 꼭 만나고 싶은 사이가 되니까. 그 순간 나는 나 자체이니까. 누군가의 자식으로, 어느 회사의 무엇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총합 그 이상, 즉 나로 존재할 수 있으니까. 그 순간 나에게 인스타 세상은 필요 없다. 나에게 가짜 어미는 필요 없다. 진짜 어미의 온기가 내 앞에 있으니까 - 나라는 사람으로 살아 있고 상대도 살아 있으니까. 우리는 서로의 세상을 대화로 넘나들며 나의 세상보다 우리의 세상이 훨씬 넓고 아름답고 깊다는 사실에 경탄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니까. 그렇게 무리지어 사는 인간이라는 동물은 온기를 나누는 거니까.

이십여 년 전 크리스마스이브, 나는 홀로 기숙사에 있었다. 그곳은 낯선 타국이었고 내 방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나는 튕겨져 나가듯 밖으로 향했다. 가장 번화한 거리를 찾아 분주하게 걸었다. 광고판이 번쩍거리고 크리스마스 장식이 화려한 전구 불빛 아래 모여든 몇몇의 여행객들을 발견하고서야 내 발걸음은 잦아들었다. 양손을 외투 주머니에 푹 찔러 넣고 마치 늦어버린 약속이 있는 사람처럼 한참 동안 그 일대를 걸으며 나는 마음의 허기를 채웠다.

지난 화요일이었다. 열여섯 정도 되어 보이는 교복을 입은 네 명의 소년들이 버스 정류장에 모여 있었다. 서로 몸을 부딪히고 웃고 떠들다 버스 한 대가 세 명의 아이를 싣고 떠났다. 남은 한 아이는 잠시 생각하는 듯싶더니 바지에 찔러 둔 핸드폰을 꺼내어 재빨리 인스타를 열고는 아래로 아래로 끊임없이 스크롤을 해댔다. 나는 생각했다 - ‘얘야, 뭘 찾는 거니.’ 그리고 또 생각했다 - ‘거기엔 아무것도 없어. 그 어미는 가짜야.’ 그리고 다시 또 생각했다 - ‘네가 찾고 있는 게 무엇인지 넌 알고 있는 거니. 어떤 사람들은 네가 찾고 있는 그것을 애착이라고 부른대.’ 그리고 질문했다 - ‘우리가 살기 위해 정말 필요한 건 무얼까.’

거울 앞에서 느리게 외출 준비를 하는 내 모습을 떠올린다. 몇 벌 되지 않지만 아끼는 옷들 사이에서 오늘에 가장 어울리는 옷을 고른다.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머리를 매만지는 거울 속 내 표정을 떠올린다. 두 뺨과 입술에 가득한 생기와 설렘을 그려 본다. 크게 숨을 고르고 문을 나서는 순간을 상상한다. 그렇게 나선 거리에 기분 좋게 온화한 햇살이 쏟아진다. 사실 비가 와도 상관없다. 그건 그 나름대로 괜찮을 테니까.

거리를 천천히 걷는다. 오가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말풍선이 떠 있다. 누군가는 점심을 무엇으로 먹을지 고민한다. 누군가는 출근길에 자신의 아이가 건넨 예쁜 말을 떠올린다. 고백하지 못한 사랑의 말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고, 버스 너머로 보이는 풍경에 작게 감탄하는 사람도 있다. 그 수많은 이야기들이, 사소하지만 포근한 이야기들이 내 삶의 어떤 풍경이 된다.

나도 나의 이야기를 머리 위로 띄워 본다. 날이 맑아서 좋다라든지, 내가 입은 옷이 마음에 든다든지, 며칠 후에 만날 누군가 때문에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하다든지 혹은 기대된다든지. 나에게도 주변의 어느 누구에게도 이렇다 하게 중요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무해하지도 않은, 그저 풍경이 될 어떤 이야기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러다 문득 ‘오늘 이유 없이 기분이 좋네’라고 혼잣말을 하면 지나가던 누군가가 ‘그 말에 저도 기분이 괜히 좋아지네요’라고 건네는 것이다. 어느덧 대화가 된 우리 둘의 혼잣말은 또 다른 누군가가 말을 보태는 순간 모두가 함께하는 독백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내가 무리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나는 또다시 혼자가 되어도 그다지 두렵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홀로 있던 방에 돌아오더라도 나는 적막하다고 느끼는 대신 고요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만하면 나는 꽤 괜찮은 하루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까만 화면을 바라보고 있어도 전혀 우울하지 않은 것이다. 내가 느낀 건 진짜 온기였으니까. 철사로 엮어 만든 어떤 장치가 아니라 정말 살아 있는 존재들과 함께인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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